[텅장심리] 왜 선불(기프트)카드 쓰면 더 많이 쓰게 될까?

By 2019년 3월 13일금융의 이치

돈은 종종 다른 형태를 띄기도 한다.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상품권, 선불 카드를 비롯해서 카지노칩에 이르기까지. 종종 이렇게 다른 모습을 띈 ‘돈’들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망각하게 한다. 사실 세상의 수많은 마케팅과 간련 결제 수단들은 이런 망각을 조장(?)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걸, 당할 때 당하더라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무언가를 산다는 것, 쇼핑을 한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꽤 고통스러운 경험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얻는 만큼 우리는 ‘돈’을 잃을 수 밖에 없기에, 돈을 지불할 때 우리는 심리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손실을 회피하고 싶고,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그것이 줄어든다는 건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지불의 고통”이라고 칭해지는 이 심리는 MIT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드라젠 프렐렉 Drazen Prelec과 조지 로웬스타인 George Lowenstein의 논문 <적자와 흑자>에서 처음 나온 단어다. 이 통증은 사실 ‘지출 자체’가 아니라, ‘지출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게 더 크다고 한다. 그러므로 같은 금액의 지출이라고 해도 그 지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면 많이 할 수록 그 고통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실제로 뇌영상과 자기공명 영상을 이용해 촬영하면 돈을 지출하는 행위가 신체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영역을 자극한다고 한다.)

왜 나는 비슷한 운동 앱을

7개나 결제하였을까?

 

언젠가 어떤 모바일 게임에 미쳐 있을 때였다. 마침 이벤트가 진행중이었다. 구글플레이스토어의 기프트카드를 15만원어치 사서 충전하면, 꽤 좋은 게임 아이템을 준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짓이지만, 게임에 미쳐 있던 나란 인간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결제를 했다. ‘어차피 선불금은 적립해두었다고 필요할 떄 쓰면 되고, 아이템은 공짜로 받는 거니까 개이득이잖아.’라고 내 안의 소비합리화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뭘 잘 구매하지도 않는 편이다. 7~8년 동안 결제한 금액을 다 합해도 5만원이 될까 말까 했을 테다. 그런데 15만원이 충전되어 있으니 새로운 증상이 생겼다. 뭘 자꾸 사는 거다.

 

 

왠지 써도 괜찮은 돈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돈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 안 생긴다. 그냥 숫자다. 별로 읽지도 않을 거 같은 전자책을 사지를 않나, 평소라면 광고가 좀 뜨더라도 참고 무료로 썼을 앱들도, 굳이 결제를 해서 광고 없는 프리미엄 버전으로 하나하나 다 바꾸고 있다. 그러다 어느 새 스마트폰에는 비슷비슷한 피트니스 앱이 7개나 깔려 있다. 그렇다고 그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쓰는 것도 아니면서;;

‘지불의 고통’의 구성요소

‘지불의 고통’ 을 망각했을 떄 벌어지는 전형적인 행동인 것이다. 행동경제학자 댄 에리얼리는 그의 저서<부의 감각>에서 “어떤 것을 소비하기 전에 미리 그 대가를 지불하면 그것을 실제로 소비할 때는 거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소비하는 시점에는 지불의 고통이 전혀 없으며, 나중에 지불해야 할 일을 두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바로 딱 그 증상이 일어난 것이다.

‘지불의 고통’은 아래의 두 가지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1. 돈이 지갑에서 나가는 시점과 그렇게 구입한 것을 소비하는 시점 사이의 시간적 간극
2. 지불 그 자체에 기울이는 주의력

즉, 지불의 고통 = 시차 + 주의력의 소비

 

그리고 선불(기프트) 카드는 이런 고통을 없애는데 아주 탁월한 기능을 한다. 선불카드를 사용하다 보면, 우리는 이미 자연스레 그 돈을 ‘이미 쓸’ 돈으로 취급하게 된다. 인터넷 콘텐트를 보는 것에 대해 한 집단에는 선불 포인트 형식으로 비용을 결제하게 하고, 한 집단에는 기사를 볼 떄마다 결제하게 하게 하였더니 첫 번째 집단(선불 집단)은 두 번째 집단(건별 결제 집단)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비용을 썼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벅 기프트 카드에 3만원을 충전하면 이건 ‘어쨌든 커피를 사 마셔야 할 돈’이 된다. 그러니 그때 그때 결제할 때보다 괜히 더 비싼 메뉴를 사 먹게 된다. 지불의 고통을 잊게 하는 동시에 지난 회차에 얘기한 ‘심리적 회계’까지 더한 더블 콤보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사용처가 한정되어 있는 상품권이나, 카지노의 칩 등은 다 이런 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

 

결제 방식은 어떻게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고통을 회피하게 마련이다. 원래 고통스러우면 안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소비와 관련해서 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고통을 회피하려고 하지, 그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고통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우리가 돈을 쓰게끔 하고 싶은 수많은 이들도 그 방법을 함께 찾아준다(?) 사실 기프트카드, 선불카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금융 결제 시스템들은 다 그런 논리를 갖춘다.

사실 돈을 지불하는 가장 번거로운 행위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세고 잔돈을 거슬러 받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다. 번거롭다는 것은 그만큼 주의력을 요하고 해서 돈을 쓰는 행동을 인식하게 하고, 지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게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용카드만 해도 이 과정을 간소화한다. 카드를 건내고 (한 번 긁고) 돌려 받으면 끝이다. 또 미리 소비하고, 나중에 지불하게 만듦으로써(시차를 늘려줌으로써) 또 한 번 지불의 고통을 잊게 한다.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Amazon)이 초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특허는 바로 원클릭(One-Click) 결제 서비스다. 인터넷 결제의 프로세스를 극단까지 간소화한 것이다.


요즘 하나 둘 등장한 수많은 간편 결제 방식들은 이렇게 우리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결제 방식에 따라 구매 의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세계 최대 전자결제 플랫폼 알리페이(Alipay)가 리서치 전문업체 닐슨과 공동 발표한 ‘2017 중국인 관광객 해외 소비 및 지불행태 보고서(2017 Survey Report of Trends for Overseas Chinese Tourism Spending Pattern and Payment Methods)‘에 따르면 응답자의 91%는 해외 매장에서 모바일 결제를 이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이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결제 방식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의미에서는 결제에 있어서 ‘사용자 편의성’이 증대된 것이지만 또 그만큼 우리는 쉽게 지갑을 열게 된 것이다. 때론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대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지금 액티브엑스가 그립다는 건 아닙니다만….)